
출판사 : 바다
지은이 :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청소년들이 그저 ‘우리도 섹스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차원에서 이런 책을 만든 것이 아니다. 청소년은 사랑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눌러야 하고, 성욕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반기를 들기 위함이다. 또한 피임법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임신이나 출산,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져야 하는 모순된 문제 상황을 공론화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에는 이 청소년들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아냈다. 모텔에 들어가지 못해 후미진 공원이나 공중화장실 같은 더럽고 위험한 장소에서 섹스해야 했던 이야기, 학교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 임신하고 출산하는 동안 차별받았던 경험, 학교에서 교사에게 성희롱당하고 성폭행의 위험에 처했던 사연, 탈가정 청소년이 성매매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등 각자가 겪은 개인적인 사연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학교와 가정 내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연애 금지 조치, 남녀학생 간의 윤리거리 지정 문제, 공허한 성교육 문제, 청소년 임신출산 지원 부재 같은 사회문제 등 성 관련 담론에 직접 목소리를 낸다.
모든 인간은 성적 존재다
십대 자녀가 나도 애인과 스킨십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부모가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해야 하는 일이지 지금 할 일이 아니라고.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학교도 못 다니고 네 인생은 망가질 거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자유로운 성은 낙태와 성병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태어나게 되는 생명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성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이다. 이런 말의 이면에는 누구든 성으로 인한 위기에 처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고립된 존재가 될 것이고, 그 사람은 모든 면에서 실패하고 불안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사회적인 안전망이나 보장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으로 인한 문제는 오롯이 개인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성적 존재다. 누구나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로, 입시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이유로 청소년의 성은 원천부정 당한다. 사실상 연애 금지 조치를 정해둔 학교도 많고, ‘남녀학생 간 윤리거리 30cm’ 규정을 두어 이성끼리 나란히 서 있기만 해도 처벌하는 학교도 있다.
피임과 관련한 제대로 된 어떠한 성교육을 받지 못함에도, 임신하게 되면 학교를 다니기 어렵다. 낙태를 강요받고, 출산이라도 하게 되면 예전과 같은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도, 학교 안에서도 성폭행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변태’ 선생님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청소년의 증언이 어른들의 귀에 들어가도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친구들과 쉬쉬하며 이야기할 뿐이다. 성희롱을 당하면 밤늦게 돌아다니진 않았는지, 짧은 치마를 입지는 않았는지, 그러니까 성희롱을 당할만했는지 의심받고 점검받는다. 성소수자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동성애자의 경우 별다른 이유 없이 동급생에게 폭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트렌스젠더라면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는 교복을 입기 위해서는 투쟁 아닌 투쟁을 해야 한다. 커밍아웃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학교에 남아 있기 힘들어진다. 그저 이것은 일부 극소수 ‘까진’ ‘날라리’의 일이 아니다. 정보 차단으로 인해 ‘야동’ 같은 음성적인 경로에서 배우는 성 의식은 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혐오로 이어지기 쉽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책임지지 않고 섹스를 그저 쾌락의 도구로만 삼는 일그러진 성 문화를 고착시킬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청소년의 성을 부정하고 유예하라고만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청소년의 힘과 역량 기르기가 답이다
학교 성교육이 실효성이 없고 제대로 성을 교육하지 못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는 문제다. 베이비박스 존재에 관한 논란 등으로 인해 십대의 임신과 출산, 낙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악하고 놀랄 뿐, 어떻게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청소년의 성 문제는 자신의 삶과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성 문화를 만들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지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가 부재한 까닭이다. 청소년들은 청소년 스스로 힘과 역량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른들에게 그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남는다면 성폭력의 위협에 처했을 때 그저 “안 돼요!”라고 외칠 수밖에 없지만, 상대방과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라면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성의 문제는 삶의 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사회적 규정이나 언명만으로는 보장될 수 없다. 또한 개인의 사회적 조건과 위치, 상황에 따라 보호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때조차도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은 근본적인 답이 될 수가 없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온전히 행사하고 보장받으려면 무엇보다 개인이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얻고 판단력과 협상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하며,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여러 상황에 직접 대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기획할 역량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모든 개인에게 이 과정을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과 차별, 낙인, 편견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292~293쪽)
실상이 어떠한지, 무엇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인지 파악하고, 어떤 방향으로 교육과 제도를 끌고 갈 것인지 그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책에는 공론장에서 빠져 있던 십대청소년의 진짜 목소리가,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